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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진남관(麗水 鎭南館)」 국보 제304호

여수 진남관은 1598년(선조 31) 전라좌수영 객사로 건립한 건물로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중심기지로서의 역사성과 1718년(숙종 44) 전라좌수사 이제면(李濟冕)이 중창한 당시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으며, 건물규모가 정면 15칸, 측면 5칸, 건물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이다. 여수 진남관은 2014년 제6차 건축문화재분과위원회에서 해체보수하기로 결정되어 현재 보수 중에 있다.

「여수 타루비(麗水 墮淚碑)」 보물 제1288호

조선 중기의 명장인 이순신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타루(墮淚)’란 눈물을 흘린다는 뜻으로, 중국의 양양 사람들이 양호(羊祜)를 생각하면서 비석을 바라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고사성어에서 인용하였다.

여수 이량 장군 방왜축제비는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 여수 진남관내에 있는, 조선시대 전라좌수사를 지낸 이량 장군이 왜구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쌓은 방왜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후대에 세운 비이다.
2003년 10월 4일 전라남도의 문화재자료 제240호로 지정되었다.

「여수선소 (麗水 船所)」 사적 제392호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던 자리이다. 특히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거북선을 만들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도상으로 보면 가막만의 가장 북쪽에 조선소가 있으며 조선소의 바다 입구에는 가덕도와 장도가 조선소의 방패 구실을 하고 있다. 또한 먼 바다에서 보면 육지처럼 보이고, 가까이 봐도 바다인지 호수인지 알아보기 어려워 중요한 해군 군사 방어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충무공 자당기거지는 임진왜란중인 1593년부터 1597년까지 5년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어머니인 변씨 부인과 부인 방씨가 충청 지방의 전란을 피하여 머물렀던 곳으로 원래 창원 정씨 문중의 집으로 임진왜란
당시 부하였던 충정공 정대수 장군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집이 있었다고 합니다.

충무공 이순신, 의민공 이억기, 충현공 안홍국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은 임진왜란 때 목포, 노량, 당포, 한산도, 부산포, 명량 해전에서 왜적을 무찔러 우리의 바다를 지켰고, 선조 31년(1598) 노량에서 도망가는 왜적을 무찌르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글에도 재주가 있어 『난중일기』와 같은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며 전쟁터에서 읊은 시조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좋은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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